머무르는 곳이 꼭 실체가 있을 필요는 없지만그곳이 자주 무너지고 망가진다면관계는 아주 얄팍하게 이어져있는 거나 다름이 없지 그럼에도 그 얄팍한 인연에 기대어 정을 나누는 관계를나는 애틋하다고 느낀다 - 새벽에 깼는데 펜팔친구 메일 와있길래 쓰는 글 -

역설적으로 허무와 공허에 휩싸여있을 때 사람은 그 어떤 순간보다 밀도 높은 글을 쓸 수 있게 된다 쓰는 이가 내면의 공백을 채우려 필사적이기 때문이다 사랑보다 이별이 더 처절하고 시끄러운 것도 그 이유에서다 내가 접한 그들 모두 누군가가 차지하고 떠난 마음의 빈자리를 메꾸기 위해 어떻게든 발버둥 치고있었다 또한 여전히 발버둥 치고 있다 혹자는 그런 처절한 발버둥이 추하다 말한다 혼자 남겨지는 쪽을 부끄럽게 여기고 멸시하기도 한다 선비라는 단어가 조롱의 의미로 쓰이고 오글거린다는 동사가 한 스크롤에 네댓번 걸리는 요즘 사회에서 남겨진 이별은 그런 의미를 갖는다 더 좋아하는 쪽이 되는 걸 수치로 여긴다 이제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마음을 쉽게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좋아하는 마음은 쪽팔린 것이기..

난생 처음 들어보는 이름의 가수가 차트에 들어오고 난생 처음 보는 얼굴의 사람이 요즘 대세 라이징스타 이런 수식어를 가진 채 스크린에 등장하고 내가 모르는 사이 사회의 흐름이 빠르게 변해감을 실감할 때마다내가 더이상 하루 온종일 휴대폰 붙잡고 타인과 교류하던 어린아이가 아니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마다내가 주류에서 벗어난 인간임을 항상 상기하고 있다나는 남자를 좋아하지도 않고 유행하는 드라마를 보지도 않고 특정한 장르에 깊이 몰두 해본 적 없고 술도 담배도 잘 받지 않는 몸으로 태어났고 천성이 예민한 기질에 클럽 입구만 가도 어지럼증이 이는 나약한 달팽이관을 가져서 사회에 녹아들기 위해 부던히도 노력해야만 했다즐겁다고 생각한 적 없었으나 좋아하는 것만 하고 살 수는 없으니까 이정도는 감내해야 하는..

읽는 법도 잊었고 쓰는 법도 잊었다 일의 효율과 실리만 추구하다 보니 인문학적 지능이 많이 퇴화했다 공감과 이해의 말보다 훈수가 쉽다 주제에 대해 사실과 고찰을 나열하는 글은 1시간만에 5장도 쓸 수 있는 반면 오늘 있었던 일 최근에 겪은 사건 나의 생각 요즘 고민 상태 이런 얘기를 하려면 3시간이고 4시간이고 고민을 해야한다 쓸 수 있는 말이 없다기 보다는 무엇을 써야할지 모르겠다 살면서 나를 드러내는 일을 크게 반기지 않다 보니 말하기보단 듣는 일이 익숙했고 그건 지금도 여전하다 방어적인 태도가 삶에 고착됐다 이전의 나는 일주일에 5번씩 약속을 잡고 회식이나 모임에는 빼지 않고 참가하는 활달한 사람이었는데 어느순간부터 그런 게 전부 의미 없다고 느껴져서 지금은 히키코모리가 됐다 매일같이 밖에는 나가지..

누군가의 나쁜 기억으로 남기 전에그 사람을 떠나고 싶어나를 좋아해 주던 사람들을 상처주기 전에속상하고 괴롭고 불안한 마음을 안겨주기 전에차라리 나를 좋아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못되게 굴어서 정을 떨구는 짓은 그것 나름대로죄책감이 드는 일이기에 실행하고 싶지않고바란다면 운명이 우리를 그렇게 이끌어어느 순간부터 서로를 찾아보지 않게 되고그렇게 좋은 과거만을 남긴 채 남이 되었으면 좋겠어 한 달에도 몇십 번씩 증발되고픈 욕구가 차오른다

물론 삶은 쉼과 재충전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지나쳐 나태함으로 굳어질 때 인간은 본래의 목적을 잃고 헤맬 수밖에 없다 최근 나 역시 피로를 핑계 삼아 잠시 쉬어보겠노라 했더니 어느새 자기 개발이며 학문적 열정은 기억 저편으로 밀려나 있었다 과거 그렇게도 열심히 공부에 매달리던 내가 어찌 그리 변했는지 되레 신기할 지경이었다하지만 생각해보면 이는 자연의 섭리와도 같다 어떤 기계든 오래 방치하면 녹슬고 과도한 사용은 고장을 부르기 마련이다 매번 공부하고 때려 고치는 것이 고철덩어리 뿐이니 이딴 것 외에 마땅히 비교할 대상을 찾을 수가 없다 중요한 것은 적절히 쓰는 법이다 기계가 오랜 시간 작동하지 않으면 기능을 잃는 것처럼 인간의 사고와 노력도 지속적 단련 없이는 무뎌질 수밖에 없다이제는 쉼의 달콤함을 ..

여전히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모르겠다

문제를 해결하기 전까지 오로지 그 난제에 몰두하며 외부의 모든 요소를 배제하는 태도는 유년 시절부터 아빠으로부터 물려받은 성향일 것이다 평소 아빠가 동일한 방식으로 어떤 사안에 전념하는 모습을 볼 때면 그러한 태도가 강렬한 집중력의 표상으로 느껴져 존경심을 불러일으키곤 하였는데 이상하게도 나에게서 그러한 태도가 발현될 때면 이는 효율성을 상실한 미련한 고집으로만 보였다 어쩌면 이는 나 자신에게 지나치게 박한 기준을 적용하는 자아와 연관이 있을지 모른다 내 안에는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지니는 자아 존중감의 흥미로운 왜곡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는 자기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냉혹한 평가를 내리면서도 타인에게는 관대하고 무한히 포용적인 태도로 드러난다 나의 실패나 실수는 곧 삶 전체의 무능을 입증하는 심판과 같지만..

나는 오랜 세월 내면에 응축된 분노라는 짐을 지고 살아왔다 이는 어린 시절부터 형성된 일종의 정신적 습성으로 나의 사고 체계는 항상 이분법적 단순성 속에서 기능하곤 했다 사람들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 또한 그러했다 그들의 모습이 조금이라도 낯설거나 불편하게 느껴지기만 하면 나는 즉시 그들을 나와 이질적인 존재로 규정하고 말았다 이와 같은 협소한 시야 속에서 나는 내가 옳다고 확신하는 세계를 경계 짓고 그 경계 안에 스스로를 가둔 채 살아가는 삶을 선택했다 그러나 근래 들어 다양한 사람들과 접촉하며 그들의 삶을 관찰할 기회가 있었다 그들의 존재 양상은 각기 다르고 다채로웠다 처음에는 이러한 다름이 내게 위협처럼 다가왔다 하지만 대화를 통해 점진적으로 깨닫게 된 사실은 그들이 나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단..

평일에는 일터에서 바쁜 일상을 보내고도 귀가 후 세 시간 남짓 순전히 공부에 몰두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오롯이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주말만큼은 마음 한편에서조차 책을 펼칠 기운이 솟지 않는다비행기가 이륙하려면 중력을 이기는 양력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선 충분한 속도와 엔진의 추진력이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륙을 위한 힘이 채워지지 않는다면 비행기는 그저 멈춘 상태로 머물거나 무력하게 무너지고 만다 내 삶은 언제나 정지 상태를 유지하려는 관성과 싸워야 한다 외부에서 강한 바람처럼 다가오는 자극이 없다면 나는 스스로를 움직일 원동력을 찾지 못한다무기력이라는 중력은 강력하다 나를 땅에 붙들어 매고 무엇이든 시도하려는 나의 작은 의지마저 짓눌러버린다 활주로 끝에서 더는 나아가지 못하고 서성이는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