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 표류기

 

김씨 표류기 (2009)

감독 ㅣ 이해준

 

웬만하면 제작 국가 기준으로 포스터를 선정하는데 한국 포스터가 하나같이 개 못 생 겨서 부득이하게 일본 포스터로 가져왔다. 

 

중학생 때 다니던 학원과 엘레베이터 사이의 통로에 걸려있는 홍보 전단지로 이 영화의 이름에 익숙해져 있었다. 이외에도 몇 번 포스터 때문에 빛을 못 본 영화로 언급이 돌길래 흥미가 생겼었는데 어느 날 문득 이 영화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 두 명은 각자 고립된 환경에 처해있다. 밖으로 나오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해 섬에 갖힌 김씨. 스스로 고립되길 자처한 정연. 자살하러 한강에 뛰어들었다가 실패하여 강물에 의해 뚝섬으로 떠밀린 김씨는 정신을 차린 뒤 넥타이로 자살시도를 한다. 용기가 없어 그 역시 실패로 돌아가고 결국 도심 속 무인도에서 살아갈 방법을 궁리한다. 정연은 민방위 훈련으로 도로가 텅 빌 때마다 카메라를 들어 도심을 촬영한다. 사람이 두려운 정연에게 무인의 도시를 촬영하는 일은 몇 없는 취미였다. 그러던 중 정연의 카메라에 김씨가 잡힌다. 정연은 이후로도 김씨를 관찰한다. 

무인도 생활이 꽤나 적성에 맞았던지 김씨가 모래사장에 적어둔 HELP 구조 문자는 어느 순간 HELLO로 바뀌어 있다. 김씨는 그곳에서 나가기를 포기했다. 원치 않게 되었다. 정연은 김씨의 HELLO에 답장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와인병에 리플을 넣는다. 고립되길 자처했던 정연은, 고립을 받아들인 김씨에 의해 집 밖으로 나서게 된다. 다섯 개가 넘는 와인병이 무인도에 쌓이는 동안, 두 사람은 만나본 적도 없는 상대와 소통하며 위로받는다. 

폭우가 내려 강이 범람하고, 정연의 실제 모습이 폭로되며, 안정되었다고 생각한 그들의 삶에 재난이 닥친다. 공무원들에 의해 김씨는 보금자리를 잃는다. 그는 밤섬에 표류하는 동안 매일같이 보았던 맞은 편의 63 빌딩으로 향한다. 마침내 자살하기 위해서. 

정연은 그런 김씨를 뒤쫓지만 김씨를 태운 버스가 출발하며 점점 멀어지기만 한다. 정연이 도로에서 울며 포기하려던 때 민방위 사이렌이 울린다. 버스가 정지하고 정연은 다시 달린다. 햇살이 내려오는 창가 자리에 낡은 정장을 입고 앉아있던 김씨를 정연은 발견한다. 울면서 미소 짓는 정연의 모습에 김씨 역시 마주 웃으며 영화는 끝이 난다. 

 

엔딩 크레딧에 결혼하고 잘 살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지 않느냐며 친구가 불평했다. 나는 오히려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아 좋았다. 두 사람은 동반자살 했을 수도 있고 그럼에도 삶의 마지막 순간 나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 행복했을 것이다. 그런 행복도 있을 것이다⋯. 

 

이해는 사랑을 동반한다. 김씨 표류기는 성별이 다른 두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앞세워 남녀간의 사랑을 암시하였지만 세간에서 말하는 사랑이 아닌, 서로를 끌어안고 독점하고 입 맞추는 것뿐만이 아닌, 그런 사랑을 나는 알고 있다. 서로를 사랑하지 않아도 사랑할 수 있다. 삶의 끝에서도 누군가를 구할 수 있다. 엄청난 재력을 가진 리디광공이나 로맨스 드라마의 남주가 아니어도 된다.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관계가 있으니까.